미국에서 유학 중인 한 국내 변호사가 우리 법조계에서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는 판사와 소송 대리인의 '법정 외 접촉' 문제를 비판하는 글을 보내 와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유학 중인 김지홍 변호사는 최근 소속 로펌인 법무법인 지평으로 보낸 '미국에서의 통신'이라는 글에서 지난달 4일 미국 전역에서 치러진 법조윤리시험(MPRE: Multi-state Professional Responsibility Exam) 출제 문항을 소개하면서 한국 법원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윤리시험은 한 소송에서 변론을 마치고 숙의에 들어간 재판부에 원고측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 "양측 주장을 더 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고 판사가 이를 수용해 변론을 재개한 것이 징계 대상이 되는지를 묻는 문제였다.

한국적 상식에서는 징계대상이 되지 않을 듯한 이 문제에 대해 출제기관인 미국변호사시험 위원회가 내 놓은 정답은 '징계대상이 된다'였다.

변호사는 아무리 사소한 사안이라도 판사에게 연락하기 전에 소송 상대측 변호사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고 판사는 당사자의 일방과 접촉을 고려하거나 허락,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미국 변호사 및 법관 윤리규정 내용이 정답의 근거가 됐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 시험에서 제시된 '놀라운' 답안을 접한 뒤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우리나라 대법원의 '변호사 및 검사의 법관면담에 관한 행정예규'를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 예규에도 법관과 변호사의 접촉이 금지돼 있지만 많은 변호사들이 일방적으로 판사와 접촉하는 것을 문제로 느끼지 않는다"며 "판사 또한 입증에 부족한 점이 있을 때 한쪽 대리인에게 직접 연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고객을 위해 법관을 설득하는 등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의 모습이 바람직하다거나 '뛰어난' 우리나라 판사가 한쪽 대리인과 접촉한다고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견해에 대해 '절차적 정의'가 결여돼 있음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미국 사법제도는 적법절차(due process)의 준수라는 도덕적 가치가 뿌리깊이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며 "비록 편파적 행동이 없었더라도 법관과 당사자 일방의 접촉을 허용하는 것은 재판의 절차적 공정성 자체를 훼손하고 사법부 권위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했다.

그는 "'절차 중시'는 인간이 만든 제도의 한계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서 출발하며 재판의 정당성은 판결의 타당성보다 동등한 기회보장에서 나온다"며 "사형제도 폐지 주장 역시 만의 하나 재판이 잘못돼 억울한 사람을 사형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끝으로 판사와 '접촉능력'을 홍보하는 변호사들 및 재판부와 개별 접촉을 요구하는 '고객'들에게도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법관-변호사의 접촉이 당장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공정해야 할 사법제도의 기반 자체를 흔들고 잇단 판결 불복과 상소율 증가로 사회적 비용이 증가될 수 있다"며 "미국식 윤리규정 제정 논의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진행 중이지만 제정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역설했다.